'레이싱 소음 규제', 국내 모터스포츠계 어쩌나?

모터스포츠 경기는 빠른 스피드에서 오는 쾌감뿐 아니라 엔진 배기음이 쏟아내는 굉음의 매력 또한 만만치 않다.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배기음만 듣고도 엔진 메이커나 팀을 구별할 정도의 모터스포츠 마니아도 많다. 이를 위해 모터스포츠 경기에 나서는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소음기가 달려 있지 않다. 고출력을 유지하고, 무게를 줄이는 동시에 모터스포츠만의 매력을 쏟아내기 위해서다.

이런 가운데 국내의 대표적 레이싱 서킷인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과 강원 인제의 인제스피디움측에서 갑작스레 소음 규제안을 들고 나왔다. 시즌 개막을 코 앞에 둔 국내 모터스포츠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이다. 모터스포츠 선진국에 비해 규정이 지나치게 높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4년간 개최됐던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올 시즌에는 개최되지 않는 등 한국에선 여전히 모터스포츠가 비인기 종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을 운영하는 전남개발공사와 인제스피디움을 운영하는 코리아레이싱페스티벌(KRF)측은 최근 국내 모터스포츠 주최사에 각각 105㏈(데시벨), 90㏈로 규제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소음 때문에 경기장 주변 민원이 많다는 이유에서이지만, 일반도로에서 운행중인 승용차의 소음규정도 최대 105㏈이다. 당연히 지나친 수치라 할 수 있다.

두 경주장은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외진 곳에 건설됐다. 영암서킷은 갯벌을 매립한 지역에 건설됐고, 인제스피디움은 내린천 상류 지역 산기슭에 지어졌다. 주위환경을 고려한 환경영향평가도 통과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경기를 할 때 나오는 소음을 충분히 감안했다는 뜻이다. 영암서킷 주변은 주로 경주장 내방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시설이고, 인제서킷 주변에는 30여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영암서킷의 경우 경주장 소음보다는 주변 도로를 달릴 수 있는 번호판을 부착한 자동차들이 내뿜는 굉음이 민원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F1 머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경주차들은 서킷이 아닌 공도에서는 달릴 수 없다.

이를 두고 '지역민 달래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경주장이 만들어지면 외부 내방객으로 인해 인근 지역에 상당한 경제창출효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에 미치지 못하자 지자체에서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는 것. 경주장 운영측이 일방적으로 규제안만 제시하고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와 슈퍼레이스,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 등 정작 모터스포츠 주체들과는 이렇다 할 공청회조차 갖지 않은 것이 그 사례다.

FIA(국제자동차연맹)는 경주장에서 벌어지는 대회에 관해선 별도의 소음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본자동차연맹(JAF)의 경우 경주차에서 3m 떨어져서 측정했을 때 최대 120㏈이고, 영암서킷처럼 0.5m 떨어졌을 때는 135㏈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30㏈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슈퍼레이스에 참가하는 팀들은 소음을 줄여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일방적인 규제안에 대해선 반발하고 있다. 소음기만 부착해서 될 일이 아니라 엔진부분 시스템을 전부 바꿔야 하는 것이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당장 올해부터는 시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제대회는 유연한 규정을 적용하고, 국내대회만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면서 역차별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