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못해요"… 유명무실 층간소음관리위원회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웃 간 층간 소음 갈등의 대안(代案)으로 지자체들이 내놓은 ‘해법’인 층간소음 관리위원회가 주민들의 참여 거부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에 아파트별 위원회 구성을 명시했고, 이 중 서울시를 비롯한 11개 시·도는 이를 의무화했다.

주민들도 사실상 층간 소음 해법이 없는 상태에서, 유일한 아파트 내 민원 창구인 위원회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참여하시겠느냐”고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구성 의무화 대상인 300가구 이상 아파트(승강기가 있거나 중앙 난방을 할 경우 150가구 이상) 2258곳 가운데 1218곳(54%)에만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주민들은 “삼자 대면을 주선해야 하고, 상담 전화도 계속 받아야 하는 등 스트레스가 큰 업무를 누가 맡고 싶겠느냐”고 말한다. 위원회 경비를 아파트 예산에서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서 수당조차 없는 ‘봉사직’인 곳이 많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주민 전모(57)씨는 “누가 위원회를 만들어주면 편하겠지만, 다들 동대표도 잘 하지 않으려는 상황에 돈 안 받는 봉사 활동을 누가 하려고 하겠냐”고 했다. 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곳도 많다.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구청에 제출하기 위해 3명짜리 위원회를 만들긴 했지만 실제로 모인 적은 없다”고 했다. 강남구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지자체에서 층간 소음 분쟁을 관리소가 해결하라며 제도적으로 떠민 것”이라며 “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층간 소음 분쟁이 발생하면 아파트 관리원이 조용히 눈치를 주는 식으로 넘기고 있다”고 했다.

층간 소음 분쟁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권력이 보다 강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층간 소음 현장에 가면 소음을 일으킨 사람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 중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이 직접 소음 측정기를 통해 데시벨을 측정한 뒤에도 중재에 상습적으로 응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등 법적인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